힙합문화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가장 주목받는
유형의 문화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힙합 패션, 힙합 뮤직, 힙합 스타일, 힙합 댄스 등.....
'80년대에는 생각지도 못한 용어와 스타일이었던
힙합문화가 '90년대의 문화 전반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힙합'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먼저 힙(hip)과 합(hop)을 단어적으로 풀어보죠.
'힙'은 '엉덩이'를 뜻하고 '만세'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도 뜻을 달리 하여서 '60년대에 '히피'를
표현할때의 형용사로 쓰이기도 했으며 '90년대에는
'신세대'라는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합'은 60년도에는 '비트족'이라는 의미로 쓰였고, 재즈가
평가받던 시절에는 '재즈팬'이란 의미로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지식통'이란 뜻의 hepster나
'속사정에 밝다'는 뜻의 hep이란 단어와
같은 의미의 속어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협의적인 의미에서 '합'을 살펴보면, '50년대 로큰롤이 생겨난
이후 미국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댄스파티나 춤을뜻하고, '60년대에는
'변칙적으로 추는 춤'을 뜻합니다.
마치 거대한 회오리처럼 휘몰아 치는
'힙합'이라는 장르는 음악만을 일컫는 것도,
그렇다고 특정한 스타일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며,
'힙합'이라는 댄스의 한 형태가 기존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정의를 내린다면
힙합은 흑인으로 부터 형성된 음악과 춤, 패션,
그리고 그들의 철학과 생각을 동반한 문화이며
동시에 '라이프스타일'을 뜻하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흑인 할렘가에서 10대들에 의해
흘러 나온 이 특별한 문화조류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세계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패션, 춤, 노래, 의식까지도 지배하는
'힙합 스타일' 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할렘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때문에 어쩌면
'힙합'은 우울하고 폭력적이며, 과격하게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단순이 이런 암울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방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의
천부적인 음악성과 율동으로 한단계 높은
차원의 대중문화로 승화시켰습니다.
이제 '힙합'은 더이상 미국 빈민가에서 떠돌던
그들의 정체도 모를 중얼거림도 아니며,
따라할 수도 없는 춤도 아닙니다.
우리의 문화 곳곳에서 '힙합'은 그들만이
점유할 수 있는 자유롭고, 솔직하며, 젊은
문화사조로서 10대들을 사로잡는 새로운 흐름인 것입니다.
'힙합'은 이제 더이상 흑인들만의 문화는 아닌 것입니다.
힙합이라는 단어와 힙합이라 불리는 음악이
이제는 더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그것은 우리 생활에 아주 근접해 있습니다.
소위 블랙뮤직이라 칭하는 피부색깔적 특성을
강하게 띄는 힙합은 더이상 "흑인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그들은 이 음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뉘앙스의 미사여구(?)는 통하지 않습니다.
흑인들은 가난합니다. 하지만 레이건 보수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미국내 아프로 아메리칸들은
어느 정도 백인들과 큰 차이 없는 사회적 혜택을
받았었고, 때문에 초기 힙합은 요즘처럼
으르렁거리는 과격함의 대명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초기힙합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곡인 '슈가힐 갱'의
<랩퍼'스 딜라이트>만 해도 전혀 그런 면을
찾아볼 수 없지만, 아직도 노예주를 꿈꾸는
남부백인 보수파의 대대적 후원으로 대통령으로
등극한 레이건 시대의 출범을 기점으로 백인 중심의
정책 탓에 백인과 흑인의 구분이 뚜렷해지고
흑인에게 돌아가던 각종 혜택들도 파격적(?)으로
삭감하게 되면서 못사는 '빈민가'='흑인동네'의
공식이 성립되어집니다.
그 이후에 나타나는 힙합음악들은 사회구조적
모순의 비판, 정치적 발언, 흑인의 연대의식 강조,
인종차별에 대한 과격한 불만 등이 주가 되었는데
이것은 아주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돈이 없어서 악기를 사지 못했고 악기가 없어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입으로 악기흉내를 내는
비트 박스와 악기와 거리가 먼 턴테이블이었습니다.
턴테이블의 사용은 힙합을 비롯한 인류 음악 역사상
아주 획기적인 전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으로
턴테이블을 악기로 사용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힙합이 위대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고 그것들 모두가 다 길거리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보면 마치
'힙합은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그냥 생겨난 문화'라고
속단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답'입니다.
턴테이블을 사용하는 모든 음악에 가장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믹서기에 붙어 있는 '크로스훼이더'라는
볼륨장치로 이것이 없었다면 힙합을 비롯한
테크노나 유로댄스 등의 믹스는 당연히 생겨날 수 없었습니다.
이 크로스훼이더는 아프리카 밤바타와 함께
힙합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그랜드마스터 플래쉬'의
3년간의 엄청난 연구결과 끝에 만들어진 것으로써
힙합음악은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운명을 지닌 음악 문화였던 것입니다.
또하나 힙합에서 턴테이블 DJ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랩입니다.
랩의 초기형태라는 것은 클럽 DJ가 가끔씩 여흥을
돋구는 멘트를 하던 것이 발전, 시(poem)낭송의
의미로 길거리의 흑인들이 운율을 타고 라임에
맞추어 하던 일종의 놀이문화였습니다.
엄청난 가난과 불행의 악순환이라는 인간의 극단적 상황에서
생성된 위대한 산물로써 랩이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인간다운 음악형태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기인합니다. 초기 힙합문화의 형태라는
것은 DJ와 랩퍼(주로 MC라고 칭합니다), 비-보이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댄서들의 의미였지만 요즘은
어떤 분위기에서도 잘 노는 사람을 지칭하여
비-보이라 부르는데 국내 백댄서와는 의미상에서
상당한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피티로 이루어졌었습니다. '낙서예술'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그래피티로 음악과 시와 춤과 그림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문화로써의 힙합의 단면을
잘 말해주는 예입니다. 브룩클린의 초기 그래피티들은
깨끗한 건물이나 벽, 지하철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실제로 경찰에게 적발되어 도망하다
총에 맞고 사망한 그래피티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 미관상 욕설이나 현란한 그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가 봅니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의
카운터컬처 한가운데 자리잡은 힙합문화에 있어
'낙서예술'은 새로운 조류의 예술이며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쓸데없는 낙서'로 보지 않습니다.
미스터 에코같은 그래피티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옷에 로고를 찍어 팔기 시작해 그것이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그래피티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잡게 되는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같은 의미로 비-보이 또한
놀이문화로 출발하여 이제는 전세계를 춤추게 만든
월드와이드 문화로써 흥겨움을 절대 참지 않는
흑인들만의 자연스러움이 만들어낸 멋입니다.
웬만한 댄서라면 브룩클린에서 가장 오래된 비-보이
그룹 '록스태디 크루' 정도는 알고 있을 만큼
뉴욕댄서들의 '작가정신'은 유명합니다.
위의 글을 요약하면 힙합은 흑인빈민가에서
자연발생한 음악, 시, 춤 그리고 그림들을
포괄하는 상당히 자연적이고
강력한 "문화"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윗 글의 편집 출처는 웹진 YC21 그리고
유철상 (하이텔 CYBERPNK)님의 '90년대를
사는 힙합세대 그리고 그 문화'임을 밝힙니다.